"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JcGpnDPq7Fw?si=4FTPFjANpex6twYr
어릴 적 제 아버지는 작은 전파사를 운영하셨습니다.
그 시절, 가게 안에는 늘 납땜기의 연기와 WD-40 냄새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어린 저는 그 냄새가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기술자의 땀 냄새’였던 것 같습니다.
작은 동네 전파사였지만, 아버지는 손재주가 남다르셨습니다.
고장 난 라디오, 텔레비전, 카세트…
무엇이든 아버지 손끝에만 닿으면 다시 살아났죠.
그런 아버지를 동네 사람들은 ‘만물 박사님’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들이 자체 서비스센터를 세우면서
전파사들의 일감은 점점 줄어들었죠.
전성기를 누리던 가게에도 손님이 끊기고,
결국 아버지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건설회사에 들어가셨습니다.
낯선 지방 공사 현장에서, 뙤약볕 아래 묵묵히 일하셨죠.
그러다 어느 날, 사우디 건설 붐이 불었습니다.
‘외화벌이 산업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도 그 중 한 분이셨습니다.
출국 전날, 아버지는 대전에 있는 상사님께
작은 선물을 들고 직접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마음 하나가 통했는지,
사우디 근무 명단에 이름이 오르게 되셨습니다.
사막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험했습니다.
모래바람은 거세고, 낮에는 50도를 넘는 더위.
아버지는 처음엔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사에 쓰이던 발전기가 모두 멈춰버렸습니다.
전기가 나가자 작업이 중단되고, 모두가 당황했죠.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나섰습니다.
“제가 한번 고쳐보겠습니다.”
처음 보는 대형 발전기였지만,
전파사 시절 쌓은 감각으로 원인을 짐작하셨답니다.
기계를 열어보니 안쪽에 습기와 녹이 심했습니다.
아버지는 사포로 접점을 문질러 녹을 제거하고,
WD-40으로 부식된 부품을 접점을 복원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원을 넣었을 때—
그토록 고장나 있던 발전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현장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다른 고장 난 발전기들도 전부 고치셨고,
상부에 보고가 올라가면서 정식 ‘전기 기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이후에는 땡볕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셨고,
사우디 현장에서 가장 믿음직한 기술자로 불리셨죠.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거래처와 직접 교섭하며
구매 담당까지 맡게 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 뜨거운 사막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닌 **‘빛나는 기술자’**로
자신의 길을 새겨가고 계셨던 겁니다.
지금도 WD-40 냄새가 나면
그 시절 아버지의 손끝이 떠오릅니다.
그 냄새는 단순한 기계유의 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던 한 사람의 의지와 열정이었으니까요.
세상은 변했고, 전파사는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기술과 성실함은 제 마음속에서
아직도 가장 뜨겁게 살아 있습니다.
🌅 마무리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기술은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이제는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과 댓글, 그리고 티스토리 구독 부탁드립니다!
'일상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강 대홍수의 기억 — 1984년 망원동 수해 이야기 (44) | 2025.11.10 |
|---|---|
| 🏕️ 그곳은 전방 속 파라다이스였습니다 (63) | 2025.11.08 |
| 🎞 작은 방이 영화관이던 시절 – 1980년대 학원 비디오 상영 문화 이야기 (33) | 2025.11.05 |
|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 작전 — 내가 직접 겪은 45일의 긴장된 시간 (61) | 2025.11.03 |
| 🎧 라디오와 함께한 청춘 –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기억하시나요? (61) | 2025.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