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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대홍수의 기억 — 1984년 망원동 수해 이야기

johnchung 2025. 1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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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SUJ8Oi6XBpQ?si=hNG4_7_I0OledtQd

 

1984년 9월, 서울 한강 일대가 큰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망원동은 한강 범람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지역이었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제 마음속에 생생합니다.
당시 저는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 수해 전날, 불안했던 한강의 물결

수해가 일어나기 전날 밤, 한강 고수부지에는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류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거세게 부딪히며, 평소보다 훨씬 높이 차올라 있었죠.
형과 외할머니, 그리고 저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뚝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한강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물이 제방 바로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고,
조금만 더 불어나면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기세였습니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저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외할머니는 그런 물줄기를 잠시 바라보시더니
“이거 위험하겠구나” 하시며 곧바로 집으로 내려가 짐을 싸셨습니다.
6·25 전쟁 때 피난을 경험하셨던 분이라,
위험한 상황에서의 촉이 남다르셨던 것 같습니다.
형과 저는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 하며 태평하게 잠들었죠.

🐸 청개구리의 경고

다음 날 아침,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 안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던 겁니다.
저희 집은 1층이긴 했지만 지대가 높은 연립주택이었고,
창문을 넘어 들어오기 쉽지 않은 구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위험이 온다’는 신호 같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저는 평소처럼 서소문에 있는 교회에 갔습니다.
형과 할머니는 집에 남아 계셨죠.
예배가 끝날 무렵, 교회 전화로 급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망원동 쪽 난리 났대! 네 집 근처 다 잠겼어! 어서 돌아가!”

저는 급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버스는 합정동까지만 운행했습니다.
그 이후 도로는 이미 물에 잠겨 버렸기 때문이었죠.

🌊 물길을 거슬러 걸어간 11살 소년

저는 버스에서 내려, 물이 차오르는 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짐을 들고 높은 곳으로 피하고 있었지만,
저는 막연히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물은 점점 깊어졌고, 허벅지까지 차올랐습니다.
멀리서 집이 보이긴 했지만,
결국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그 순간, 어린 마음에도 ‘아, 정말 큰일이구나’ 하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다시 합정동으로 돌아온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생각했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곳은 교회였습니다.
엄마가 부산에 계셨지만, 돌아오신다면 분명 교회로 오실 것 같았거든요.

그땐 휴대폰도, 삐삐도, 제대로 된 연락 수단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감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죠.

🙏 교회에서의 재회

교회에 도착하니, 정말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부산에서 올라오시던 길에 상황을 듣고,
곧장 교회로 오신 거였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교회에서 며칠을 지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만들어주신 청국장을 먹으며 버텼죠.
그때 처음 먹은 청국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비록 불편한 대피 생활이었지만,
가족을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습니다.

며칠 뒤, 물이 빠졌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가 보니
형과 할머니도 무사히 피신해 있었습니다.
성서중학교 체육관에 피난 가 계셨고,
나라에서 나눠준 담요와 컵라면으로 며칠을 버티셨다더군요.

🏚️ 수해 이후의 망원동

집은 엉망이었습니다.
가구와 살림살이는 거의 다 떠내려갔고,
학교도 마루가 썩어 한동안 공사 중이었습니다.
우리 집 바닥도 내려앉아 공사를 해야 했죠.

그때 북한에서 인도적 지원으로 쌀을 보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 쌀로 어머니가 떡을 해주셨는데, 찰기가 없어서
“이건 좀 이상한데?” 하며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 시절의 수해는 단순히 물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느낀 ‘자연의 두려움’,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 잊지 못할 그날의 교훈

돌이켜보면, 그날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결국 가족과 다시 만나 안도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제 안에 남아
삶의 소중함과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우리를 지탱하게 만든다는 걸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은,
여전히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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